벌써 한 3개월이 흘렀지만, 마지막 날의 에피소드를 안 쓸 수는 없지
머리 속에서 완전히 휘발되어서 날아가기 전에 빨랑 써두어야겠다. :)

면접도 잘 끝났고, KCC에서의 일도 잘 끝났고, 남은 일은 오전을 잘 보내고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것. 점심무렵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다시 한 번 Houhai로 갔다. 예전엔 Houhai가 왕후의 바다인 줄 알았었는데, 간체를 좀 더 배우고 나니 Houhai의 의미는 "뒤쪽 바다"였다.

이 날은 호하이 호숫가를 따라서 찻집 차지아푸에 들렀다.
가기 전에 먼저 전화를 했다. 지난 번에 전통음악 연주를 못 들었는데 이번엔 들을 수 있냐고 했더니 처음엔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역시 이번에도 너무 급하게 연락해서 안 되는구나' 하고는 포기하고 호숫가나 보고갈까 했었는데, 30분쯤 후에 전화가 왔다. Musician을 한 사람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오우 럭키~~

강변을 걸어서 차지아푸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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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hai 호숫가는 겨울에 얼음이 얼었을 때도 경치가 좋았지만 날이 풀리니까 물결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하는 것이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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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아푸에 도착하니 약속한 Musician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도 되고 해서 요리와 국수를 시켜먹었다. 음식은 소고기에 치즈를 잔뜩 넣은 소고기 그라탕 같은 것이었는데 차지아푸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퓨전 음식이라고 한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120 Yuan 정도의 가격은 좀 과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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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주인 아주머니가 주식으로는 뭘 먹을 거냐고 해서 국수를 시켰는데, 실은 저 치즈그라탕 같은 것을 안 먹고 그냥 국수만 먹어도 충분할 뻔 하였다. 국수도 좀 가격이 쎈 편이었지만 다행이 맛이 괜찮았다. 다음에 혹 이 곳에 가게 되는 이들이 있다면 점심으로는 간단히 국수나 한 그릇 먹고 차를 마시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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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차를 주문해서 연주를 기다렸는데 한 10분 있으니까 연주자가 비파를 메고 도착했다.
연주자는 한 사람이었는데 처음엔 대학교 4학년쯤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 말을 나누어 보니 고등학교 2학년이어서 깜짝 놀랬다. 차지아푸의 연주 시스템은 예고나 예대 혹은 음악을 배운 학생들을 섭외하여 아르바이트로 연주를 해 주는 듯 하였다.  

역시 어려서 그런 탓인지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간간이 틀린 구석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_-, 나름 이 친구도 10년 가량을 배워왔고 성심껏 다양한 레파토리로 연주를 해 주었기 때문에 비파의 다양한 주법들을 볼 수가 있었다. 이렇게 연주자를 불러서 한 시간 음악을 듣는 데 드는 돈은 100위안(=15,000원)

아직 겨울이 다 가지 않아서 추웠던 터라 외투를 입은 채로 바로 한 곡을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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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 연주를 흥미롭게 지켜보노라니 비파란 게 의외료 연주법이 다양했다.
한 번에 두 줄을 안쪽으로 튕기기도, 바깥쪽으로 튕기기도 하고, 가끔은 몸통을 퉁퉁거리면서 때리기도 하고, 정말 연주기법이 다양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주법이 있냐고 물어보더니 하나 둘 손가락을 세더니 무려 1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나는 비파를 연주하는 기법이 많아야 서너개 있을 줄 았았는데, 오오옹 놀라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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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를 연주하던 학생은 영어를 거의 못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질문은 차지아푸 주인할머니가 통역을 해 주셨다. 할머니 역시 멋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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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연주 기법 중 하나로서 주먹으로 비파 몸통을 퉁퉁거리면서 치는 동작이다.
"저런 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라고 생각도 해 봤다. ㅋㅋ

연주 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순간은 어떤 왕이 죽기 직전을 묘사한 곡이었는데, 한참 연주를 하다가 갑자기 줄을 두 개 정도 풀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풀린 줄을 손가락으로 튕기니까 치지치직하면서 끌리는 소리가 난다. 초패왕이 자결하기 직전의 순간을 묘사한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줄을 풀어서 비장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현악기는 항상 줄을 팽팽히 당기고 연주 전에 조율을 잘 해야 한다는 상식을 깨는 좋은 주법이었다. 그래, 연주란 악기를 빌어 나의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가 아니겠는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옳은 연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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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곡이 끝날 때마다 곡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노래 중에는 "신장의 장미"라는 노래가 있었다(신장은 중국의 한 지방으로서 예전 위구르 족들이 살던 땅인데 예전엔 서하국이 있던 정도라고 봐야 하나? 아무튼 사막도 있고 벌판도 있고 그런 땅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팀 왕쉬 선임이 이 신장 출신이었다).

그런데 신장의 장미란 곡에는 노랫가사도 있다고 해서 그러면 비파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볼 수는 없느냐고 부탁했더니, 비파를 치면서 같이 부르기는 어렵고 노래만은 불러줄 수 있다고 하면서 일어나서 노래를 불러준다. '티셔츠의 캐릭터가 꼭 예전 카이스트의 궁금이 캐릭터와 비슷하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 흥미롭게 노래를 들었다. 나중에 왕선임이 신장출신이라는 걸 알고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냐고 물으니 자기는 잘 모른단다. 진짜 신장 출신인지 의심이 간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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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사이사이에는 곡에 대한 설명도 듣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물을 수 있었다. 내년엔 고3인데 그럼 북경의 음악대학에 진학할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유학을 갈 거라고 한다. 그래서 비파 연주를 가르치는 대학이 해외에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올해부터 피아노를 배워서 전공을 바꿀 거란다.

"아니 연주 잘 하다가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생각을 했는데, 자기는 너무 오랫동안 비파를 했더니 비파가 좀 지겹고 해외에 좀 나가보고 싶다고 한다... 뭐 그건 이해할 수 있겠는데, 이게 2년 전공으로 배워서 해외 음악대학에 갈 수 있는 것인지 내 상식으로는 좀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

 이 학생, 지금쯤은 북경 어딘가에서 피아노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려나? ~.~;;;

연주를 대강 마치고 나서는 비파을 한 번 만져볼 수 있냐고 했더니 조심조심 건네준다.
그래서 비파를 안고서 마치 내가 연주하는 양 사진을 한 장 찍어 봤다. ^^
값이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허거걱 1,000만원! 이제서야 갑작스레 앞으로 2년 피아노 해서 해외로 갈 거라는 말이 좀 이해될락 말락. 아마도 집이 부자? ^^

조심조심 건네던 손길도 이해가 갔다. 나도 다시 건네주면서 조심조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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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아푸에서 나와서는 쿤룬호텔에 들러 짐을 찾고 바로 북경공항으로 향했다.
북경 공항에서는 Priority Pass 라운지를 찾아 봤는데 역시나 있었다! 그래 제대로 된 공항이라면 PP라운지 하나는 꼭 있어야쥐!  방가방가하며 들어갔는데, 인천공항 것보다 넓은 대신 시설들이 별로였다. 무선 네트워크 설비는 가동중에 있었지만 설치되었던 유선 컴퓨터들 중에서 아쉽게도 네트웍이 제대로 되는 것들은 거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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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라운지에 앉아있다가 흥미로운 것을 하나 발견했는데, 중국어 신문, 영자 신문과 함께 러시아 신문도 제공되고 있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유럽 나라라고 생각을 해 와서 그런지 중국에서 러시아 신문이나 소식을 많이 들을 거라는 생각은 의외로 전혀 못하고 살았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러시아가 중국의 인접국 중에서 경계를 가장 많이 맞대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나를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우물안 개구리 신세는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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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과 북경을 다 들러본 이 출장은 날짜가 긴 만큼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타국에 가서 면접을 진행하는 경험도 하고, 몇 년 만에 동일한 장소의 발전을 지켜볼 수 있었기도 했고, 눈 앞에서 중국 음악의 연주를 듣는 호사도 누릴 수 있었다. :)

또, 출장의 결과로 몇 명의 중국 엔지니어들이 AceDB 팀원으로 합류하여 일한 지가 벌써 몇 개월이 되어 가니 나름 과제진행 측면에서도 의미가 큰 출장이라 할 수 있겠다. 이상 두달 열흘만에 남경 면접출장기의 대단원을 내린다.  빨리 평양 출장기랑 개성출장기도 써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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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녁에 여유가 있어서 이런 저런 글들을 써보고 있다.
지난 남경 출장기의 마지막 이야기를 쓰기 전에(실은 남경과 북경을 다 다녀왔으니 남북경 출장기인가? ^^), 쿤룬 호텔 소개를 잠시 더 해 볼까 한다.

이번에 가서 쿤룬호텔의 세탁 서비스를 이용해 봤는데 아주 감동이다. 삼성과는 special deal을 하고 있는 덕택에 세탁 서비스가 무료라고 하는데, 덕분에 옷짐을 확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세탁물을 맡긴 후 4시간 후면 아래와 같이 아주 깔끔하게 개어져서 와 있다.
이 세탁 서비스 너무 감동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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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과 같은 배도 매일 두 개씩 놓여져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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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통상 내가 호텔방을 쓰는 스타일.
옷걸이 필요 없다. 의자 하나에 옷들을 몽땅 다 걸어놓고, 가방도 근처에 둔다.
호텔설비를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느낌은 좀 많이 들지만, 나갈 때 뭘 빠뜨리고 갈 걱정은 확실히 덜한 장점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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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세트나 와인잔 세트는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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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우산~
세탁 서비스와 함께 쿤룬호텔에 대해 아주 좋은 느낌을 가지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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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일점을 준다면 아래 물 때문..
도대체 60위안짜리 물을 방에 놓아두면 어쩌자는 거냐.
물론 공짜 물 두 병도 있지만, 저 60위안짜리 심층해저수는 잘못 먹으면 곧바로 만원 날리는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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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떤 VIP들에겐 이것도 세심한 배려가 되는 걸까???

아무튼 쿤룬호텔은 그 설비, 서비스, 음식맛 등에 있어서 매우 마음에 든다.
앞으로 중국 출장을 다니는 동안 특별히 만땅이 되지만 않는다면 계속 여기에 갈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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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의 아침은 무척 바빴다.

아침 9시에 남경 공항에서 홍책임은 한국으로, 나는 북경으로 떠나야 했다.
남경공항이 좀 희한하게 되어 있어서 어영부영 하다보니 어느 새 변변하게 인사도 못하고 서로 다른 구역으로 들어가 버렸다. 로밍한 전화기를 내내 꺼두다가 비로소 켰는데, 때마침 홍책임이 전화해서 간신히 잘 가라고,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할 수가 있었다.

잠시 후 남경공항을 떠나 2시간여의 비행을 마치고 북경공항에 도착했다.예전같았으면 바로 KCC에 방문했을 텐데, 지난 3일간의 일정도 빡빡했고 새벽부터 공항에 간다고 일찍 일어나서 잠을 설친 터라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일단 호텔에 들어가서 한 시간 정도 잤다. 오후 두시쯤 되니까 좀 정신이 든다. 택시를 잡아 타고 그 때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다.

김경일 선생과의 과제마무리는 별 이상 없이 쉽게쉽게 지나갔고, 안정남 선생과의 신규 과제 상의도 기용씨의 꼼꼼한 정리 덕택에 아주 수월하게 지나갔다. 이번 출장에서의 업무는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었고 예상했던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간략하게 이정도로만 쓴다. 다만, 김경일 선생과는 2차과제를 좀 해 보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그것이 참 아쉬웠다.

저녁에는 김동준 차장을 만나서 옥류관에 갔다.
사실 저녁에 시간이 될 때에는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골라서 싸돌아다니는 것이 더 좋긴 한데, 경협 사무국의 입장에서는 또 방문한 손님 대접을 안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하니, 세상만사에 예의란 것이 있어서 내맘대로만 편하게편하게 흘러가질 않는다. 어쨌건 덕택에 비싼 음식은 아주 여러가지 먹어본다. 이번에 저녁식사를 한 식당은 평양 옥류관의 북경 분점인데, 중국계 자본과 북한 자본이 50:50으로 결합된 형태라고 한다.

저녁 식사로 뭐든 사준다고 하길래 신선로를 한 번 시도해 봤다. 이게 좀 비싼 메뉴인데 이것도 괜찮냐고 하니까 괜찮다고 해서 과감히 시도했다. 그런데 이번에 평양에 가서 들은 말에 의하면, 신선로가 좀 비싸긴 했던지 김차장이 영수증 처리를 하는 데 좀 고생을 했었나 보다. 후훗~ 그러게 나처럼 말해주는 대로 믿는 사람한테는 솔직하게 말을 하셔야지 ^^
옥류관 신선로는 비싼만큼 맛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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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처럼 생겼는데, 저게 저렇게 자그마해 보여도 안에는 아주 튼실하게 알맹이가 들어있다.
둘이 먹고 배 터지는 줄 알았다. 나도 옥류관 신선로처럼 속알맹이가 꽉 찬 사람이 되고 싶구나 ㅋㅋ

북경 옥류관에서는 북경 해당화(역시 북한 음식점 - 해당화는 북한의 전액출자임)와 마찬가지로 예술단원들이 파견되어서 7시 30분이나 8시 정도가 되면 공연을 해 준다. 그냥 나가려다가 공연을 보고 가시라는 봉사원의 말에 혹해서 잠시 공연을 보았다.

꽃다발 들고 "반갑습니다" 노래도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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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민정 씨를 닮은 사람이 나와서 빨간 옷 입고 춤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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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하트의 김민정 씨도 그렇지만 왠지 저런 인상을 가진 사람들은 왠지 신경질이 좀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좀 무서워하는 편이다. -_-;  근데 조명도 빨간색이고, 옷도 빨간색이고 표정까지 좀 무서웠다. 가까이서 사진찍으려고 갔다가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눈이 마주쳤다.
"헉" 하고 놀랬다. 역시 무서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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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용수가 춤출 때 반주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좀 있으니까 이 분이 독창을 한다.
독창을 하다가 내려와서 막 테이블을 헤집고 다니면서 악수를 한다.
이 아가씨는 왠지 텔레토비의 "뽀"를 보는 것마냥 참 복스럽게도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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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나름대로 유명한 북경의 옥류관에서, 나름대로 비싼 신선로를 먹었고, 나름대로 볼만한 공연까지 보고, 부른 배를 동동 두드리면서 나왔다.

저녁에 시간이 어정쩡하여 백화점 구경을 좀 했는데, 사진을 보고 인형을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있는 것 같았다. 유명인의 인형만 사진을 보고 미리 제작해 놓은 것이거나, 아니면 사람들의 사진을 받아서 주문제작하는 것일 텐데, 후자라면 하나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게를 지킨 사람이 영어도 못하고 해서 자세하게는 못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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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구경을 마치고는 호텔로 들어와서 쿨쿨~~
다섯째 날도 업무 마치고는 너무 피곤해서 일찍 호텔로 와서 쿨쿨~~
평상시 같으면 야경구경을 가든지 최소 Bar라도 갔을 텐데, 역시 둘째날 폭탄주 회식이 아주 컸다.
암튼 북경의 날들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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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의 북경 출장기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서 가는구나 :)
후통에서 우리가 방문한 마지막 코스는 차지아푸였다. 차지아푸는 한자로 茶家傅라고 쓰는데, 부씨네 찻집이라는 뜻이다. 홈페이지(http://www.familyfusteahouse.com)를 방문하면 찻집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정보가 조금 들어 있다.

차지아푸는 Tourist Information Center의 Wang Jing씨가 소개해 준 곳이다. 중국 전통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을 물었더니 이 곳을 단숨에 추천해 주었다.

차지아푸의 내부는 아주 고풍스런 전통 중국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데, 들어서면 세 여자분이 손님을 맞이한다. 20대의 꾸냥과 40대의 아주머니와 60대의 할머니인데, 이 찻집을 아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60대의 할머니이다. 홈페이지에서 이 분의 소개를 본 바에 의하면 찻집을 연 Professor Fu의 어머니인 것 같다. 가게를 꾸민 솜씨와 손님을 맞는 고상함이 하도 남달라서 찻집을 나갈 때 우리가 뭐하시던 분이냐고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역시나 중국 계측기학회 저널 편집장이었다고 한다.  오호라,, 과연~~~

아래 사진의 가운데 계시는 분이 바로 이 찻집의 매니저를 하시는 Mistress Fu이다(I gu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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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래 사진의 두 여자분은 식사와 차를 담당하는 다른 두 분.
이 두 분도 아주 친절한데, 아쉽게도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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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마치 천년쯤 전 중국 어느 고관대작의 서재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탁자나 가구들, 비석들, 악기들이 정말로 차분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집이었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차를 시켰는데, 차는 38위안에서 100위안 정도까지 꽤 가격이 나가는 편이었다. 아마도 찻집 안이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에는 가격대가 비싼 것도 한 몫 하고 있는 듯 했다. :)

가격이 다른 집들에 비해서 상당히 쎈 편이어서 차를 시키기 전에 전통 악기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지 부터 물었는데, 그걸 푸할머니가 알아보는 동안 기다리다가 어찌되었든 차라도 마시고 가자고 결정을 했다. 차 종류가 한 20~30 종류가 있었는데 이름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70위안 정도의 차를 두 종류를 시켰다.

사진은 차 종류를 설명하는 푸할머니. 이 찻집에서 가장 좋은 것은 경륜과 학식이 풍부한 푸할머니와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이 찻집을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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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후통관광을 하느라 너무 추웠었는데, 가게에 들어오니까 따뜻해서 좋았다.
그래서 한번씩 웃어 주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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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다렸더니 차가 나왔는데, 아주 멋진 다과세트도 같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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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걷느라 배가 고팠었던 모양인지, 차맛보다도 이 과자맛이 더 기억에 남는다 ^^
클로즈업으로 보니 다시 입에 침이 흐르는구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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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한 번 입에 대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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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먹을 것을 입에 넣었더니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인간은 원래 배가 고프면 먹을 것밖에 안 보이고, 배가 차게 되면 주위를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아래 사진은 김용성 책임이 찾아낸 비석과 체스판, 그리고 바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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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올려두는 유리 탁자 안에는 푸얼차 뭉치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
요새 중국에서 푸얼차 투자가 아주 투기 수준이라던데, 혹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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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대낮에 음악을 들으러 찻집을 찾았던 것이라, 둘이서 차만 마셔서는 좀 맹숭맹숭하다.
인간이란 또 배도 부르고 주위도 좀 익숙해 지면 놀거리를 찾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옆에 있던 체스판을 꺼내서 체스를 한 판 두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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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 다 마시고, 과자도 다 먹고, 체스도 다 두고,,,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푸할머니랑 차지아푸 식구들에게 정답게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다음 번에 다시 오면 꼭 음악 연주를 들어보리라 다짐을 하고는 나왔다.

아래 사진은 강가에서 바라본 차지아푸의 모습이다. 생각보다 아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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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에서 나와서는 허위허위 길을 재촉하였다.
서둘러서 점심식사도 하고, 호텔에 들어가서 짐을 찾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도 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못 먹어본 후터스를 중국에 가서 가 보았으며,,,
(복장과 미모에 대해서는 명성과 달리 너무 평범했으나, 오믈렛 맛 만큼은 아주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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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짐도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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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가서 비행기도 잘 탔다.^^
(김용성 책임이 보고 있는 저 책은 매우 두꺼운 영어 원서였는데, 여행중 하도 저녁마다 놀러다녀서 아마도 저 책을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처음 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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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날씨가 좀 쌀쌀했지만, 김용성 책임과 함께 아주 뿌듯하게 일하고 뿌듯하게 놀고 왔다.
관광에 있어서는 선택한 것마다 엑스트라의 행운이 붙었으니 이 아니 좋지 아니한가~
북경에서의 신개발 코스를 여기저기 퍼트리리라 생각을 하면서 가뿐한 마음으로 집으로 고고씽했다.

이상 2008년 1월의 북경 출장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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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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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0 09:4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동일한 곳을 제가 갔다면? 우책임 처럼 다양한 이야기 꺼리와 다양한 느낌들을 느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책임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2. 우경구
    2008/03/10 12:5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과찬의 말씀이신데요? :) 여행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관광지 자체가 30% 정도 영향을 미치고, 동행하는 사람들이나 만나는 사람들이 나머지 70%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동행도 잘 만났고, 가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니 저로서는 그저 행운인 것이죠 ^^ 다음 남경 출장도 곧 정리해서 올릴 터이니 기대하세요~ ㅋㅋㅋ


이번 출장에 대해서 여행기를 좀 써볼까 했더니 지난 번 북경 여행기의 종지부를 찍지 못한 것이 생각나서 여기 지난 여행기의 마지막 편을 써 둔다. 사실 이야기로는 많이 남지는 않았는데, 둘 다 아주 독특한 경험이어서 빠뜨리면 나중에 서운할 것 같다.

공왕부를 나와서 가이드는 우리를 후통에 있는 진짜 주택으로 데리고 갔다. 물어보니 후통에 몇 군데의 집과 계약을 하고는 관광객들에게 실제 사람이 사는 집안을 구경 시켜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래 사진은 가이드가 계약한 집의 대문에 다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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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가니 후통의 일반 가옥은 네모반듯하게 생겨 있다. 각 집들은 정방형으로 담을 쌓고 있는데, 사각형의 각 변마다 건물이 한 채씩 세워져 있다. 남향인 북쪽 칸에는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이 살고, 왼쪽과 오른쪽 칸에는 아들과 딸이, 북향인 남쪽 칸에는 머슴이 살았다고 한다. 역시 남향이 가장 살기 좋은 것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흥미로운 것은 집안의 서열에 따라서 건물 높이가 정해지는데, 자연스럽게 북쪽의 건물이 가장 높게 지어지고, 동서가 그 다음이고, 남쪽의 북향 건물은 아주 높이가 낮았다.

아래 사진은 가장 어르신이 산다는 북쪽 건물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이다. 아직 연탄을 때는 점이 흥미롭다. 주의할 것은 이런 모습을 북경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생각하면 천만의 콩떡 만만의 팥떡이고, 일부러 이런 모습을 보존하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손대지 않고 놔둔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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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건물의 주인 할머니가 우리를 반긴다.
가이드의 통역에 힘입어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집의 소개라든지 가족의 소개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인할머니는 여러번 투어 손님들을 경험한 모양인지 아주 손님맞는 자세가 능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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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 관람은 가이드 여행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코스였는데, 그냥 밖에서 보고 지나갈 때와는 다르게 체험하는 여행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가옥 자체나 집 내부의 생활수준은 아주 어렸을 때 내가 보아왔던 시골 집들을 떠올리게 해서 아주 신기한 느낌은 없었다. 그렇지만 관광지 내의 일반 가옥에 들어가서 실제 주민과 대화하는 것들은 일반 여행과는 다른 또다른 느낌을 주었다.

가옥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는 다시 릭샤를 타고 거리를 좀 달렸다. 달리다가는 다시 출발지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다음 목적지인 차지아푸로 가자는 생각이 들어서 인력거 운전사에게 지도를 건넸다. 사진은 인력거 운전사가 차지아푸의 위치를 확인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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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아푸까지의 코스는 계약과 달라서 인력거 운전사가 차지아푸에 바로 내려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걸어서 차지아푸까지 갔다. 사진은 차지아푸 바로 앞의 조그만 공원에서 김용성 책임. 아침 햇살을 받아서 사진 느낌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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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아푸에서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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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이 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1층 뷔페에서 먹어보자고 하고(우리 객실요금엔 뷔페요금이 포함임), 1층에 내려갔다.

1층 조식뷔페는 29층 라운지의 조식뷔페보다 음식 종류에서나 맛에서나 게임이 안 되게 좋았다.

다만, 나는 전날 "갑정방"에서 상당량의 맥주를 들이킨 고로,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자제하면서 먹을 수 밖에 없었다. 후일 쿤룬 호텔에 묵는 이들에게는 이 1층 조식뷔페를 적극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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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종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도 아주 예술이다.

실내에 있는 거대한 야자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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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를 품고 있는 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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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물 위에 비치는 장식용 비파까지..
마치 옛 이스탄불의 어느 왕궁에 있는 것 같은 그런 훌륭한 인테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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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아침을 가볍게 먹어주고는, 다시 여행지로 고고씽~

오늘은 후통을 가기로 했다.

후통은 중국 황궁 옆에 있는 조그만 골목길인데, 전날 방문했던 Houhai 호수와 아주 가까운 곳이다.
원래 오후 3시 30분까지는 공항에 가야겠는지라, 우리는 이 마지막 날이 매우 어정쩡한 관광이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잘한 것 중 첫번째는 박물관이나 자금성 복습 대신 바로 후통을 택한 것.

후통의 어원은 몽골 말로 "우물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몽골인들이 송나라를 접수하고 나서 북경을 세웠는데, 당시 황궁 근처의 물이 나는 곳에 원나라 귀족들이 정착하고는 이곳을 후통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런데, 사회주의 시절에 이 곳을 노동자들에게 국가가 나누어주었고, 그 이후로 빈민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예전의 서민 가옥 모양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서 북경 서민들의 생활상을 보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관광지이다. 이 곳을 소개하는 인쇄물에는 "The world's most beautiful slum" 이라고 쓰여 있었다. :)

암튼 짐을 호텔 1층의 여행센터에 맡기고는 후통으로 고고씽 했다.
잠시후 우리는 Houhai 호수변에 다다라서 택시를 내렸다.
날씨,,, 정말,,, 무지무지하게 추웠다.

춥기도 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어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Tourist Center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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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통에 가기로 한 것이 우리가 첫번째로 잘한 일이라면, 이 Tourist Center에 간 것은 우리가 두번째로 잘 한 일. 그것은 바로 아래 사진의 친절한 아가씨를 만나서 제대로 여행코스를 잡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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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국에서 영어도 잘 통하고, 정확한 관광정보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친절하기도 할 뿐더러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완전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이 날 우리는 중국 전통 음악 연주를 들으면서 차한잔을 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일러준 것.

게다가 김용성 책임이 비치된 여행 팜플렛들 중에서 쑥 꺼낸 후통 릭샤 투어(인력거 투어)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줌으로써 우리가 적당한 가격에 좋은 투어를 하게 해 주었다. 우리가 이 날 잘한 세 번째 결정이 바로 이 인력거를 타고 하는 가이드 투어를 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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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게도 가이드에게 전화해주고, 인력거 타는 곳까지 걸어서 안내해 주었다.
Xiexie~~~

그리하여, 후통 투어와 공왕부 화원 투어를 선택한 우리들은 잠시후 이렇게 인력거 위에 앉아있게 되었다. 혹시나 게이커플처럼 보일까봐 걱정을 많이 했으나, 사방에 둘씩 타고 다니는 릭샤들이 널려있어서 한시름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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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우리 인력거를 끈 아저씨
무지하게 추운 아침이었는데, 사진을 보니 다시 추운 느낌이 든다. 으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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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샤를 타고 둥실둥실 가는 기분은 괜찮은 것이었으나,
담요를 덮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춥기는 되게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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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엔 온 사방천지에 인력거들이 널려있다.

이윽고 공왕부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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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물은 청조의 건륭제때 세도를 누린 후신이란 사람이 자신의 보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2층건물이라고 한다. 가이드 말로는 2층 건물 전체가 백성들한테서 착취한 보물로 가득찼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 건륭제는 정말 훌륭한 군주였는데, 딱 하나 잘못한 것이 후신이라는 간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한다.

공왕부는 그 간신이었던 후신이 살다가 세월이 흘러흘러 청나라 말엽에는 공왕이라는 친왕이 살았던 곳이다. 공왕은 자기 형제가 황제가 된 후에, 힘이 없어서 비리비리했는데 아편전쟁이 발발했을 때 북경에 남아있다가 외국과의 협상에 중국 대표로 참석하면서 세력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협상에서 외국에게 많은 이권을 넘겨주어서 요새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공왕부의 화원이 아주 유명하다고 하는데, 내가 봐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서태후의 이화원은 너무 거대해서 돌아보는 데도 지쳤는데, 여기 공왕부 화원은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맛이 있었다. 가이드가 설명을 해 주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었을까?

여기는 공왕부 화원의 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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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에서 아주 초기에 세운 서양식 문이라고 한다.

사진은 공왕부 화원의 출입문과 후신의 보물창고 사이에서 가이드와 이야기하고 있는 나.
말하는 가이드도, 듣는 나도 추위를 무릎쓰고 투어를 하는 것이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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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바위는 물고기로도 보이고 애를 안은 여인으로도 보인다고 하는데,
물고기가중국에서는 복의 상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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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왕부 정원은 어떻게든 복과 연관을 지으려고 별 해석을 다 해 두었다.

아래 박쥐모양 연못도 박쥐가 복이랑 발음이 비슷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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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클릭해서 잘 보면 저 바위에 "복지" 라고 써 있다. 박쥐연못이라는 뜻이다.

또한 저 연못 주위의 은행나무들이 가을되면 노란 잎을 떨구는데, 그게 금전과 같아서 더 복스럽단다. 이쯤되면 꿈보다 해몽이란 말이 더 이상 어울릴 수가 없다. :)

이 연못에서 옆으로 가면 굉장히 유명한 정자가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포석정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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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팔각정같이 생긴 곳에 친구들이 둘러앉아서 자기 앞의 술잔이 지나가기 전까지 시를 한 수씩 읊어야 했다고 한다. 못 읊으면 원샷해야 했다고 ^^ 비록 지금은 병을 돌리거나 삼육구를 하는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어쨌든 옛 사람들이나 현대인들이나 술자리에선 남한테 마시게 하는 것에 잔머리를 많이 쓰는 것 같다. 그래도 옛날 방식이 더 멋스럽긴 하다.

그 다음 장소는 공왕의 딸래미가 머무는 곳.
옛날 중국에서는 공주가 시집가기 전에는 저 처소를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불쌍해서 그랬는지 예쁘게는 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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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공주가 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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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통로의 위에는 칸칸마다 박쥐가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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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마리의 박쥐가 조각되어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김용성 책임이 "그걸 누가 세어 봤어요?" 라고 물었다. 가이드는 미소로 화답~ 중국에서는 하도 거창한 것들이 많아서 무엇을 믿어야 할 지 무엇을 뻥친다고 해야 할 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예전 TV 프로그램인 "믿거나 말거나~~" 를 보는 기분으로 설명을 들으면 딱이다 ^^

통로도 색감이 참 좋았다. 사진을 찍는데 노출을 실패해서 보는 것만큼 멋지게 안 나와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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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돌무더기가 여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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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더기 가운데는 통로가 있는데, 태후가 써놓은 복자가 그 안에 크게 돌판에 새겨져 있다.
하여간 복 어지간히들 좋아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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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후신이 낚시를 즐겨했다던 연못.
큰 물고기가 낚이면 큰 복이라고 해서 집에 가지고 들어가고, 작은 물고기가 나오면 작은 복이라고 연못에 다시 넣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신의 아들대에 이르러 모든 가산을 건륭제의 다음 황제에게 몰수당했으니 후신이 집에 가져간 물고기들도 생각보다는 작았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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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웃는 표정은 너무 추운 나머지 안면 근육을 풀어보려는 것이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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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쯤 되는 데도 분수를 틀어 놓으니 연못 중심은 저렇게 녹아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곳은 모형 만리장성이다.
후신은 자신이 장성을 넘어서 중국을 삼킨 몽골족임을 기억하기 위해서 만리장성의 모형을 만들어서, 시간이 나면 그 위에 올라갔다고 한다. 아마도 정복자의 쾌감과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묘하게 버무러진 그런 느낌을 가졌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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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릭샤투어중 공왕부 파트가 끝나고, 다음엔 후통 골목길 관광을 가게 되었다.
후통 관광부터는 다음 편에... 헥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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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용성
    2008/01/2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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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중국출장기 정말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가서 느낀 재미도 재미지만, 잘 정리된 글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곱씹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2. 우경구
    2008/01/25 12: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김책임님이 그렇게 말해주시니, 쓰는 보람이 나는군요 :)
    감사합니다. 잇힝~


둘째날 저녁, 그리고 그 다음날은 아주 제대로 놀아준 시간들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아주 뿌듯하여라~~

일단 KCC에서 나왔을 때 벌써 6시쯤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식사를 하러 갔다.
식사하러 간 곳은 다름아닌 점심에 먹고 감동을 느꼈던 안휘타워의 식당.

아, 그러나 다시 찾은 안휘타워에서 우리는 완전 KO패를 당하고야 말았다.
그 저녁에 우리가 시킨 음식들은 아래 메뉴판의 "해황진어쩌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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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래 메뉴판의 "은아육어쩌고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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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점심에 시켰던 요리 하나였는데,
그 양이 아주 무지막지했다.

먼저 "해황진블라블라"는 테이블 가운데 있는 접시에 담긴 면인데, 튀긴 면에 간장소스를 한 느낌이었고, 상당히 맛있었다. 사실 이 두 개의 음식만 나왔을 때만 해도 "우리 오늘 저녁 음식도 성공이군" 하고 아래 사진처럼 만족하는 분위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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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나온 "은아뭐시기건면"을 보는 순간 우리는 그야말로 그 양에 압도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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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쓰...
안 그래도 먼저 나온 두 개의 접시를 반절밖에 못 헤치운 상태에서 배가 차버렸는데,
세번째 접시의 그 양에 너무 압도된 나머지, 식욕도 다 떨어져 버렸다.

R4 식당에서도 잔반 제로를 자랑하는 나로서는 맛있는 음식들을 남긴다는 게 참 치욕스러운 일이었으나, 저걸 다 먹었다가는 출장기간을 연장하고 베이징 병원 신세를 져야 하겠기에 결국 엄청 남기고 두손을 들었다. 아래 사진은 당시의 잔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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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너무 불러 괴로운 상태로 호텔에 도착하고는 잠시 얼굴을 씻어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는 이제 바야흐로 베이징 관광 타임. 이히~~~

이날 저녁에 우리가 잘 한 것 중 첫번째는 바로 호텔 1층 여행가이드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것이다. 원래는 가까운 싼리툰(북경 외국 대사관 밀집지 근처의 Bar Street)에 갈까 했었는데, 가이드를 보는 직원이 요새 HouHai가 뜬다고 한다. 그러면서 택시기사에게 보여주라고 아래와 같이 적어준다.

후해주점가인가? (네번째 글자는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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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해는 왕비 "후"에 바다 "해"이니 번역하면 황후의 바다가 되려나.
자금성이 바로 근처이니 황후를 갖다 붙이는 것은 좋은데, 자그마한 호수를 가지고 바다라고 하는 걸 보면 역시 중국 사람들은 뻥치는 데 한 재간이 있다.   하긴 요리 이름들도 언뜻언뜻 보면 참으로 거창하기도 하지 :)

암튼 택시를 잡아타고 Houhai로 갔다.
내려서 보니 첫번째로 눈길을 잡아 끄는 것은 Houhai 호수변 첫번째 가게.
뭔고 하니 바로 스타벅스! 중국말로는 아래와 같이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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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가다가 보니 좌판이 있는데, 붙어 있는 포스터는 중국혁명시대를 연상시키는 포스터.
이건 중국에서도 완전 복고향수를 자극하는 것인데, 비유하자면 우리나라에서 70년대의 "살기 좋은 새 마을" 포스터 같은 것을 어느 집 장롱에서 빌려가지고 와서 리어커에 붙인 거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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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사진도 한 방씩 찍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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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들러보다가 쭉 둘러보다가 사진 한 방 찍어주시고, Bar들 중 한 곳에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간 Bar는 지나가면서 봤을 때 중국악기를 들고 연주를 하는 곳이었는데, 막상 들어가니 연주는 끝나있었다. 우리는 기다리면 다시 그 연주를 들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안고 들어가 앉았다.

어쨌든간, 바로 이곳이 우리의 밤을 아주 짜릿하게 책임져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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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여 "갑정방" 되시겄다.

갑. 정. 방.

알파. 오메가. 클럽.

Fantastic Naming.

Two Thumbs Up ^^


그런데, 이 곳 범상치 않다.
테이블에 앉으니 테이블에 앉으려면 기본으로 400위안을 내야 한다고 한다. 테이블 하나에 무조건 400위안 charge라면 중국에서 굉장히 비싼 가격이다. (나중에 보니 칵테일 쪽은 자리세가 없었다.)

그러면 오늘 연주 코스가 뭐냐고 했더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나갈까 말까 막 고민하다가, 나중에는 기다리다 지쳐서 "그래 뭐가 나오든 일단 먹으면서 보자" 하는 심정으로 그냥 맥주를 시켰다. 아, 그러길 정말 잘 했다는 것을 잠시 후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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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보이는 맥주는 Draught Beer 였는데, 우리는 잔당 50 위안(350ml) 짜리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500ml 잔이었고, 좀 더 비쌌다. 그래서 결국 400위안 딱 맞춰 먹으려고 했는데, 오버해버렸다. -_-;  그렇지만 맥주맛만큼은 아주 좋았다.

이 밤의 공연은 아래 밴드가 책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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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말을 잘 모르지만서도, 이 친구들의 연주는 참 들을 만 했고, 가끔씩은 중국어만 안다면 따라서 부르고픈 노래들도 몇 개 흘러나왔다. 여기 이 사람들은 모두 악기를 다루고, 이 친구들 외에도 사회를 보는 리더 한 명과 보컬을 맡은 여가수 한 명이 같이 한 팀을 이루는 듯 했다.

특기할 만한 사람이 세 사람 있는데, 저기 저 가운데 있는 친구가 아주 음악적으로 재주꾼이다.
나중에 전자 바이올린을 들고 나와서 바네사메이의 곡을 하나 연주하는데 아주 제대로였다.

아래 사진의 사람은 전체적인 진행을 맡고, 사회도 보는 리더였다. 저렇게 노래도 잘 할 뿐더러, 중국말을 모르는 우리가 들어도 능수능란하게 사회를 보았다. 아마 클럽의 상당한 포지션도 겸임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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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컬만 전문적으로 하는 카리스마 짱인 여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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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도 잘 하고, 분위기도 좋고, 신청곡도 받길래..필받은 우리도 신청곡을 써서 보냈다.
특히 김용성 책임은 예전에 밴드를 했었기 때문에 기타곡조를 듣고는 더욱 필이 받았었다. ㅋㅋ
암튼 그래서 김용성 책임은 에릭 클랩튼 노래를, 나는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을 적어냈다. 그것도 간신히 한자를 기억해서 무려 한자로 신청곡을 적어서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는 가볍게 씹혀버렸다. 잇힝~~

그리고는 잠시 쉬는 시간이 되었는데, 왠 인도 무희같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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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정방의 시스템은 저 위의 밴드가 공연을 하고 중간중간 밴드가 쉬는 시간에 지루하지 않게 다른 공연팀들이 틈을 메꾸어주는 식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지나가면서 본 중국 전통 음악 연주도 사실 그런 차원의 intermission 공연이었던 것이고, 이 댄서팀도 그런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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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가씨들 둘은 춤추는 내내 한 번도 표정의 변화 없이, 심지어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춤을 추더라. 일단 상반신에 걸친 것이 현저히 적었기 때문에, 우리 역시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열심히 보았다. ^^

그런데 한 번만 하고 다시는 안 나오는 다른 intermission 공연팀들과 달리 이 인도 댄싱 팀은 상주하면서 몇 번을 더 나왔기 때문에 나중엔 좀 식상해